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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개론

심리학개론/초기 심리학

Inferno.1 2020. 11. 9. 22:36

1) 구조주의 심리학

 

최초의 심리학 학파인 구조주의(structuralism)는 19세기에 생겨났다. 분트로 대표되는 구조주의자들은 물질을 분석하여 세포, 분자, 원자로 분류하는 화학자나 물리학자들의 연구를 방법에 영향을 받았다. 이에 따라 구조주의자들은 마음을 구성 요소로 분석하고, 그 구성 요소가 어떻게 상호작용 하는가를 발견하려고 하였다. 즉, 정신을 구성하는 요소와 내용을 밝히려고 시도하였다.

구조주의는 분트의 제자인 티취너(Tichener, 1867~1927)에 의해 명명되고 일반화되었다. 영국인 티취너는 코넬 대학교의 교수가 되면서 미국에 구조주의를 소개하였다. 마음을 연구하기 위해 그는 정신의 기본 요소라고 여긴 심상, 느낌, 감각의 세 가지 요소로 복잡한 정신 경험을 분석하기 위해 '분석 전 내성법(analytic introspection)'을 사용하였다. 분석적 내성법을 이용한 전형적인 한 연구에서 티취너는 피험자에게 소리와 같은 자극을 제시한 후에 그 소리로 인해 생기는 심상, 느낌, 감각에 대해 보고하도록 하였다. 또한 미각을 분석한 연구를 통해 미각이 짠맛, 쓴맛, 단맛, 신맛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구조주의는 최초로 등장한 심리학파이면서 동시에 가장 빨리 그 자취를 감춘 학파였다. 이는 구조주의 학파의 연구가 연구실에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성적, 언어적으로 능숙한 성인의 의식적인 정신적 경험을 연구하는데만 적합한 제한적인 내성법에 지나치게 의존하였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은 특정한 자극에 대한 내성법적 보고가 자극의 변화에 따라 일관되지 않으므로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며, 내성법에 따른 동일한 자극에 대한 보고는 피험자에 따라 일관성을 보이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한 내성적 활동이 실제의 의식적 경험에 영향을 미쳐 의식을 변화시킨다는 것이었다. 비록, 분석적 내성법의 단점으로 인해 구조주의가 소멸하기는 했지만, 오늘날 많은 심리학자는 피험자들의 정신 과정에 대한 연구에서 내성법이 사용한 언어적 보고를 통해 연구하고 있다.

 

 

 

2) 기능주의 심리학

기능주의(functionalism)라 부르는 미국의 심리학파는 구조주의에 대한 대응으로 생겨났다. 기능주의 심리학자들은 정신의 구성 요소를 분석함에 있어 구조주의 심리학자들이 스스로 제한을 둔 것(내성법을 사용할 수 없는 어린이, 정신장애인, 동물 등은 대상에서 제외하였고 실험실에서의 연구에만 초점을 두었다)을 비판하였다. 기능주의 심리학자들은 인간이 갖고 있는 의식의 내용이 아니라 인간이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의 심리적 기능은 연구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구조주의 심리학자들이 맛에 대한 정신적 구성 요소를 연구한다면, 기능주의 심리학자들은 맛을 구별하는 능력이 어떻게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개인이 환경에 적응하는데 도움을 주는 유전적 형질의 역할을 강조하는 다윈의 진화론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기능주의 심리학자들은 의식적인 정신이 인류의 생존을 증진시키므로 그 정신은 진화한다고 가정하였다. 의식적인 정신은 우리가 현재의 상황을 평가할 수 있게 하고, 그에 부합하는 최적의 행동을 선택하게 한다. 상한 음식의 맛을 보았을 때를 생각해 보자. 우리는 즉시 그것을 뱉을 것인데, 이러한 행동은 미각의 기능적 의미를 증명하는 것이다.

가장 유명한 기능주의 심리학자는 미국의 심리학자며 철학자인 제임스(James, 1842~1910)다. 그는 여러 지능 분야에 대하여 연구하였다. 심리학에 대한 접근을 살펴보면, 제임스는 정신을 실제 강물의 흐름처럼 별개의 조각들로 나눌 수 없는 하나의 흐름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는 구조주의 심리학자들의 선호한 일종의 분석적 연구인 내성법은 정신(의식의 흐름)을 연구하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결국, 이것이 분트와의 경쟁을 야기하였다.

제임스는 하버드 대학교에 연구소를 만들었다. 그러나 분트와 달리 제임스는 연구소를 실험을 위해서가 아닌 증명을 위해 사용하였다. 실제로 그는 실험실 내에서 이루어지는 연구에는 관심이 없었고, 실험실에서의 제한된 행동이나 정신 경험에 연구를 국한시키는 심리학자들을 비판하였다. 대신 그는 심리학자들에게 실험실 밖의 세상에서 인간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연구하라고 촉구하였다.

비록 많지 않은 실험을 하였지만 제임스는 심리학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고전이 된 그의저서 <심리학의 원리>는 철학과 물리학 그리고 심리학의 상호 관계를 조명하였다. 또한 감정의 이론에 대해서도 연구하였으며, 오늘날까지도 그 영향이 미치고 있다. 기능주의 심리학자들은 심리학 연구에서 실험 대상을 동물이나 아이들뿐 아니라 정신장애인까지 확대하였다. 또한 심리학의 주요 문제들에 기억, 사고, 성격과 같은 주제들까지 포함시켰다. 그리고 연구를 실험실에 국한시켰던 구조주의 심리학자들과 달리, 기능주의 심리학자들은 베이컨의 전통을 이어받아 그들의 연구를 일상생활에 적용하였다. 대표적인 기능주의 심리학자인 듀이(Dewey, 1859~1952)는 심리학을 교육현장에 적용하였다. 그러나 심리학을 실제 생활에 적용하는 응용심리학 분야의 창시자로 볼 수 있는 사람은 뮌스터버그(Munsterberg, 1863~1916)였다.

1910년대 심리학자로서 뮌스터버그의 명성은 제임스에 버금갔다. 그는 많은 저서와 연설을 통하여 심리학을 대중화하였고, 루스벨트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저명인사들이ㅣ 그의 친구가 되었다. 또한 뮌스터버그는 비록 하버드 심리학연구소를 운영하기 위해 채용되었지만 응용심리학의 창시자로서 가장 많은 공헌을 하였다. 그는 심리학이 법, 산업, 교육, 심리치료 그리고 영화비평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저술을 남겼다. 또한 뮌스터버그를 비롯한 그의 동료 기능주의 심리학자들은 심리학을 연구실 밖으로 옮겨 일상생활에 적용시키고자 하였으며, 심리학의 연구 목적은 의식이 인간 생활에 어떠한 역학적 기능을 하는지와 같은 정신적 기능을 규명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3) 행동주의 심리학

행동주의 심리학(behaviorism)의 창시자로 볼 수 있는 왓슨(Waton, 1878~1958)은 기능주의 심리학자들과 구조주의 심리학자들이 공유한 생각, 즉 정신이 심리학을 연구하기 위한 적절한 대상이라는 생각에 반대하였다. 그와 또 다른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직접 실험이나 관찰이 불가능한 정신 경험을 연구하는 데 반대하였다. 러시아의 심리학자 파블로프(Pavlov, 1849~1936)는 자신의 연구소에서 정신에 대한 전문용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해고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또한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모든 행동을 조건 형성의 결과로 보고 인간 이해의 기본 공식을 자극과 같은 반응의 관계로 규정하였다.

왓슨과 파블로프 같은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에게 심리학 연구의 정확한 대상은 '관찰 가능한 행동'이었다. 정신적 경험과 달리 행동은 측정되고 다른 과학자들에 의하여 증명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배고플에 대한 연구에서 행동주의자들은 정신적 경험을 연구하기보다는 관찰 가능한 섭식행동 그 자체를 연구한다. 비록 왓슨은 정신 과정이 직접적으로 행동을 유발한다는 것을 부정하였지만 정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는 배고픈 느낌과 같은 정신에서 섭식의 원인을 찾는 대신, 저혈당과 같은 신체적 조건이나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와 같은 환경에서 그 원인을 찾아 설명하려 하였다. 1915년 왓슨은 미국 심리학회 회장으로 뽑힐 만큼 영향력이 있었고 주목받았다.

역사학자인 보링(Boring)은 1920년대에 마치 모든 미국인이 행동주의 심리학자가 되어 가는 것 같다고 기술하였다. 그러나 왓슨은 1920년 행동주의가 큰 영향력을 갖게 되었을 때 학교를 떠났다.

왓슨은 존스 홉킨스 대학교를 떠나 뉴욕에 있는 한 광고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거기서 많은 경영 실적을 올린 그는 부회장 지위까지 오르게 되었으며, 시장 연구 기법들과 상표의 매력을 평가하는 실험들, 그리고 정교한 광고 캠페인들을 고안해 냈다. 또한 상품을 파는 데 성별 특징을 이용하여 성공적인 마케팅을 펼치기도 하였다.

왓슨은 연설을 하거나 책과 논문을 저술하고 기사를 작성함으로써 심리학을 대중화한 매력적이고 카리스마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행동에 미치는 환경의 영향력을 중요시하였다. 특히, 아동들의 행동에 미치는 환경의 영향력을 믿었다. 그의 행동주의 심리학은 그를 로크의 전통적인 경험주의자 계열에 속하게 하였는데, 이것은 아동발달에 대한 그의 유명한 논문에서 가장 적절히 표현되었다.

 

[나에게 건강한 유아와 그들을 잘 자라게 할 수 있는 환경만 제공해 준다면, 나는 무작위로 그들 중 한 명을 택하여 재능, 기호, 경향, 능력, 직업, 인종에 상관없이 그를 변호사, 예술가, 상인, 심지어 거지와 도둑까지 내가 원하는 어떤 방면의 전문가도 되게 할 수 있다(Watson)]

 

물론, 왓슨은 이 글의 내용이 과장되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환경이 인간 행동에 미치는 영향력을 무시하고는 인간 행동을 설명하기 힘들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입장에도 왓슨이 행동에 미치는 유전적 요인의 중요성을 무시한 것은 아니다. 왓슨이 유전적 요인의 중요성을 무시하였다는 주장이 많으나, 이러한 주장은 왓슨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앞의 글이 실린 논문에 잘 나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