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성 행동
물과 음식을 섭취하는 행동이 개체가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종(種, species)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생식(生殖, reproduction)도 필수적이다. 또한 어떤 종에게는 공격적 행동도 생존에 필수적이다. 공격성과 생식이 서로 밀접하게 관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성 행동과 공격성을 연이어 다루는 한 가지 이유다. 또 다른 이유는 성 행동과 공격성이 서로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성 행동과 공격성은 앞서 살펴본 갈증, 배고픔과 유사점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차이점도 가지고 있다. 갈증과 배고픔처럼 성과 공격성도 내부 요인과 외부 요인의 영향을 모두 받는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점에서 차이가 있다.
첫째, 성과 공격성은 동질정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다. 섭취 행동과는 달리 성적 행동과 공격적 행동을 통하여 어떤 생리적 균형 상태가 유지되는 것도 아니며, 설사 그러한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유기체는 생리적인 타격을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과 공격성은 내부 요인보다는 외부 요인에 의해 더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섭취 행동은 유기체가 혼자서 할 수 있는 행동인 반면, 성 행동과 공격 행동은 반드시 대상이 있어야 한다. 즉, 성과 공격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둘 이상 유기체의 상호작용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셋째, 특히 인간의 경우 성과 공격성은 학습과 문화 요인으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하등동물로 내려갈수록 문화적 요인과 학습의 영향력은 크게 줄어든다). 이러한 영향력이 너무 크기 때문에, 인간의 성과 공격적 행동에 생리적 기제가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스럽기까지 하다.
내부 요인(호르몬과 성적 동기)
수컷 쥐를 거세하면, 성 행동은 점차적으로 쇠퇴하여 결국 없어진다. 그다음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이라는 남성 호르몬을 주입하면 성 행동은 다시 나타난다. 그러므로 쥐에게는 테스토스테론이 성 동기에서 중요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호르몬이 동기화 상태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즉, 교미할 기회를 보상으로 받을 때 쥐는 여러 가지 임의적 행동을 학습할 수 있게 된다(Kagan, 1955).
고등동물의 경우도 호르몬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고등 동물로 올라갈수록 호르몬보다는 경험이나 외적인 자극 요인이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사람의 경우 사춘기 이전에 거세를 하면 성적인 관심이 발달하기 힘들지만, 성 경험이 있는 성인은 성적 동기가 몇 년 동안이나 지속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남성 호르몬이 결핍된다고 해서 성적 충동이나 성 행동이 반드시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남성 호르몬이 성적 동기를 불러일으키는 데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지만, 성적 동기를 촉진하는 역할을 할 수는 있다. 이러한 점은 인간의 성적 활동이 가장 왕성한 시기가 테스토스테론 수준이 가장 높은 청년 후반기라는 사실로도 알 수 있다. 또한 테스토스테론 수준이 낮은 남성에게 이 호르몬을 인위적으로 주입하면, 발기 빈도와 성적 활동 수준이 올라간다는 사실로도 알 수 있다(Davidson, Camargo, & Smith, 1979).
포유류 암컷의 호르몬 분비는 주기적으로 이루어진다. 쥐의 발정 주기는 4~5일 간격이며, 인간의 월경 주기는 약 한 달로 되어 있다. 암쥐나 다른 육식동물의 성 행동은 그 주기 중 발정기 동안에만 나타나며, 이 기간에는 에스트로겐(estrogen)이라는 여성 호르몬의 분비가 왕성해진다. 동물의 성 행동은 완전히 호르몬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호르몬이 분비되지 않으면 성 행동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에는 호르몬이 그다지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 인간은 배란기 동안에만 성 관계를 가지는 것이 아니며, 자궁을 제거한다고 해서 성적 충동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외부 요인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섭취 행동은 내부 요인뿐만 아니라 외부 요인의 영향도 받는다. 성 행동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페로몬(pheromone)이라는 냄새는 동물의 성 행동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와 유사한 외부 자극에 의해 인간의 성적 충동도 발생할 수 있다. 매력적인 여성을 본다거나 그런 사진을 보게 되면 남성은 발기 현상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 앞서 언급한 동물처럼 특정 자극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반응한다고 보기 힘들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성적 매력이라는 개념은 문화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회에서는 여성이 날씬해야 매력적으로 보지만, 또 어떤 사회에서는 반대로 풍만한 여성을 매력적으로 본다. 그러므로 매력적인 여성이나 그런 사진을 보고 성적인 충동을 느끼는 현상은 특정한 문화 내에서 성장하면서 획득한 학습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다양성의 효과
한 가지 음식보다 다양한 음식을 제공할 때 유기체의 섭취 행동은 증가한다. 다양성은 성 행동에도 유사한 영향을 미친다. 어떤 종의 경우, 성적 활동의 대상이 바뀌지 않을 때보다 다양하게 바뀔 때, 그들의 성적 활동 수준이 높아진다. 이러한 현상을 쿨리지 효과(Coolidge effect)라고 한다.
쿨리지 효과는 인간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과거 태평양 군도를 지배한 식민정부가 첩을 금지시키자, 아내에 대한 남성의 성적 관심이 저하되었다(Davenport, 1965). 또한 미국 성인의 경우 많은 사람이 성교를 하면서 성적 흥분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상상을 한다는 보고가 있는데, 주로 옛 애인이나 가상의 매력적인 여성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Tavris & Sadd, 1977).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볼 때, 다양성은 인간의 성 행동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예시) 성 행동과 공격성
스티클백(Stickleback; 큰가시고기)이라는 물고기가 보여 주는 성적 행동과 공격적 행동에 대해 살펴보자. 봄이 되면 스티클백은 호르몬 변화로 인해 생식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상태가 되면 여러 가지 신체적 변화가 생기는데, 수놈의 경우 아랫배 부분이 붉은색으로 변한다. 또한 행동에도 변화가 나타난다. 스티클백은 튜브 모양의 집을 짓고 마치 다른 놈이 오는 것을 기다리듯이 집 근처를 배회한다. 만약, 접근하는 물고기의 배가 붉은 색이면, 그 물고기를 라이벌로 생각하고 공격적 행동을 한다. 공격적 행동은 머리를 아래로 숙이고 지느러미를 펴는 것과 같은 위협적인 행동 패턴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위협적인 행동 패턴은 침입자의 붉은색 배에 의해 유발되는 것이다.
반면에 접근하는 물고기가 암놈인 경우, 수놈은 일종의 구애 행동을 하게 되는데, 앞뒤로 헤엄치면서 지그재그로 춤을 추는 듯한 행동 유형을 보인다. 이러한 행동 유형을 유발시키는 자극은 알을 배고 있는 암놈의 불룩한 배다. 일단 이런 식으로 암놈의 주목을 끈 수놈은 자신의 집으로 암놈을 유인하여 코로 집의 입구를 가리키고, 암놈이 집 안으로 들어가면 암놈의 등을 코로 비빔으로써 알을 낳게 한다. 그런 다음 수놈도 수정을 위해 집 안으로 들어가 알에 정액을 분비하고 부화될 때까지 알을 보살핀다.
스티클백의 이러한 일련의 행동 유형은 암놈의 모양이나 행동이 제공하는 특정 자극에 의해 유발되는 본능적인 행동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암놈 스티클백과 비슷하게 보이는 모델을 통한 실험에서도 밝혀진바 있다(Timbergen, 1951).
5) 공격성
내부 요인
어떤 종의 공격성과 성 행동은 서로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이 둘을 한 종류의 동기로 볼 수도 있다. 사슴은 교미할 시기가 되면 수컷의 경우 안드로겐(androgen)이 분비되어 성 행동과 공격적 행동을 동시에 유발한다. 안드로겐은 성적 행동뿐만 아니라 공격적 행동도 유발하는 내부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많은 종에서 사춘기 이전에는 공격적 행동이 거의 나타나지 않으며, 사춘기 이후의 공격적 행동도 암컷보다는 수컷이 더 많이 한다는 사실에서 남성 호르몬이 공격적 행동을 유발하는 내부 요인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인간의 공격적 행동도 어느 정도는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과격한 범죄를 더 많이 저지른다는 것은 명백하며(Brain, 1979), 남성에게서 공격성과 테스토스테론 수준 간의 상관관계는 놀라울 정도로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Persky, Smith, & Basu, 1971; Kreuz & Rose, 1972), 또 다른 실험에서는 약물치료를 통하여 테스토스테론의 수준을 낮추었을 때, 공격적 행동도 그에 따라 감소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Money et al., 1975).
외부 요인
공격적 행동은 내부 요인에 의해서만 유발되는 것이 아니다. 성적 행동과 마찬가지로 공격적 행동도 외부 자극에 의해 유발될 수 있다. 모이어(Moyer, 1976)는 공격적 행동을 유발하는 수많은 자극을 파악하여, 그 자극에 따라 공격적 행동을 유형별로 구분하였다. 육식동물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공격적 행동 중의 하나는 사냥감을 보았을 때 나타나는 공격적 행동(Predatory aggression)이다([그림 5]), 이러한 행동은 배가 고프지 않은 상태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다른 형태의 공격적 행동은 유기체가 혐오적인 자극을 받았을 때 보이는 공격적 행동(Irritable aggression)이다. 한 쌍의 쥐에게 고통스러운 전기 자극을 주면 서로 공격적 행동을 보인다(Azrin, Hutchinson, & McLaughlin, 1965), 인간에게서도 이와 유사한 공격적 행동이 나타난다고 한다. 또 하나의 공격적 행동은 모성적 공격 행동(Maternal aggression)이다. 일반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공격성의 정도가 높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모성적 공격 행동은 특이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쥐나 토끼의 암컷이 임신 중이거나 새끼에게 젖을 먹일 때 수컷이 접근하면, 암컷은 수컷을 공격한다(Svare, 1983).
학습의 영향
많은 종에서 공격적 행동은 학습되지 않은 본능적 행동이다. 그러나 이러한 본능적 공격 행동도 경험을 통해 변할 수 있다. 고양이가 쥐와 어릴 때부터 함께 성장하면 쥐를 공격하지 않고 오히려 보호해 준다고 한다. 반대로 다른 고양이나 쥐와 함께 성장하지 않고 고립된 상황에서 혼자 성장한 고양이는 쥐를 보는 즉시 죽인다(Eibl-Eibesfeldt, 1961), 이러한 실험 결과를 통해 동물의 공격적 행동도 학습의 영향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문화와 인간의 공격성
성 행동과 마찬가지로 공격성도 경험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인간에게 문화는 공격적 행동을 일으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또 공격적 행동이 나오는 경우 그 표출 형태를 결정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한다. 공격성에 미치는 문화적 요인의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다음의 두 사례를 살펴보자.
<사례 1>
타이티에서는 어린아이가 공격적 행동을 보일 때 부모나 친구로부터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처벌을 받는다. 타이티 사람은 좀처럼 화를 내지 않고, 상대방에 대한 나쁜 감정을 쉽게 없애며, 복수라든가 적대적인 공격성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그들은 분노를 일으키게 하는 상황을 거의 만들지도 않고, 설사 공격성을 보이더라도 신체적 수단보다는 언어적 수단으로 그것을 표출한다(Banddura, 1973).
어린아이가 타이티 사회에서 성장한다면, 사회적 영향 때문에 자연적으로 그들의 공격성 수준은 아주 낮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에 제시하는 경우와 같은 사회에서 아이가 성장한다면 그들의 공격성 수준은 어떻게 될까?
<사례 2>
야노마모족(Yanomamo, 남미의 오리노코 강 근처에 사는 종족)은 세상에서 가장 공격적인 종족으로 알려져 있다. 타인과 싸우거나 타인을 위협하는 행동은 이 종족에게서 항상 볼 수 있는 행동이다. 또한 남자는 여자에게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하며, 이를 위해 여자를 때리는 것도 흔한 일이다. 그뿐 아니라 남자는 서로의 용맹성을 알아보려고 일부러 싸워 보기도 하며, 이러한 도발적 행동으로 인하여 서로를 죽이는 경우도 생겨 결국에는 마을끼리의 전쟁까지도 일어나게 된다(Hunter & Whitten, 1976).
야노마모족 사회에서 자라난 아이가 타이티와 같은 사회에서 자라난 아이와 공격성 수준에서 큰 차이를 보일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즉, 인간의 공격성이 사회·문화적 요인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