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설명한 애트킨슨과 쉬프린(Atkinsion & shiffrin, 1998)의 기억 모형에서는 암송과 정보의 조직화가 단기기억에 저장된 정보를 장기기억으로 전환하는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전환 과정에 대한 모형으로 인지심리학자들은 기억 공고화(memory consolication) 가설을 제인 하였다. 공고화 과정은 암송과 정보의 조직화에 따른 기억 속의 기존 정보와 새로운 정보의 연합을 의미하며, 불안정하고 망각하기 쉬운 단기기억장치 속의 새로운 정보를 암송과 조직화에 의해 장기기억장치에 안정된 상대로 저장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공고화 과정의 존재에 대한 검증은 공고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보의 연합을 방해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일례로, 스파이어(Squire, 1986)는 전기 충격 치료(electroconvulsive therapy)를 받은 환자들이 경험하는 일시적인 기억 상실증을 조사하였는데, 전기충격치료의 시행 전후에 환자가 보고한 정보들을 비교함으로써, 전기 충격으로 인한 정보 연합 과정의 방해가 기억 상실의 직접적인 원인임을 밝혀냈다.
1) 암송
암송(rehearsal)은 공고화 과정에서 필요한 정보의 연합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미 1800년대에 에빙하우스(Ebbinghaus, 1985)는 반복적인 암송이 기억을 공고화하는 데 큰 효과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특히, 단기간에 급하게
이루어지는 집중 학습(masssed practice) 보다는 규칙적인 시간 간격을 두고 여러 번 수행하는 분산 학습(distributed practice)에서 반복적인 암송의 효과가 더 큰 것으로 밝혀졌다. 실례로, 교육 현장에서는 일상적으로 치르는 많은 시험을 준비할 때 벼락치기 학습을 통한 시험 공부 방식보다는 교재를 미리미리 규칙적으로 반복해서 공부하는 방식을 권유하고 있다. 인지심리학자들이 제시한 분산 학습이 집중학습보다 상대적으로 우월한 이유들로, 첫째 매 규칙적 학습 회기(learning period)마다 변화하는 정보들을 연합함으로써 좀 더 다양한 맥락 정보를 추가적으로 저장하기 때문이고, 둘째 규칙적 학습 회기 동안 취하는 규칙적 수면이 기억 공고화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2) 조직화
암송이 비교적 처리 깊이가 낮은 수준의 공고화 과정을 이끈다면, 정보의 조직화 (organization)는 좀 더 깊은 수준의 공고화를 가져온다. 특히 기억해야 하는 정보가 매우 복잡하고 다량일 경우, 정보의 조직화는 암송과 더불어 학습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기억술(mnemonic devices)은 복잡하고 많은 양의 정보를 효율적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략을 의미한다. 기억술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첫째, 기억해야 할 항목들 중 유사한 것들끼리 범주로 묶는 범주화 과정이 있다. 예를 들어, 장을 보러 갈 때 사과, 우유, 건빵, 포도, 식빵, 요구르트, 치즈, 자동, 양상추를 꼭 기억해서 사야 한다면, 과일인 사과, 포도, 자몽 및 제과류인 건빵과 식빵, 그리고 유제품인 우유, 요구르트, 치즈 및 채소류인 양상추 등의 범주로 분류해서 기억하는 것이 좀 더 효율적이다.
둘째, 기억해야 할 항목들의 특성을 서로 연결하여 임의적으로 상호작용 관계를 부여하는 상호작용 이미지 생성법이 있다. 예를 들어, 토끼, 볼펜, 야구 방망이, 톱, 거울과 같은 항목을 외워야 할 경우, 토끼가 야구 방망이를 한 손에 들고 반대쪽 손에는 톱을 들고 볼펜을 입에 문 채로 거울을 보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셋째, 쐐기법이다. 이것은 이미 익히 알고 있는 지식 항목들과 암기해야 할 완전히 새로운 항목들을 서로 연합시켜 이미 알고 있는 항목들을 인출 단서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두루치기, 할아버지, 새끼발가락, 다슬기, 너구리, 여수 등을 외워야 한다면 하나 하면 할아버지, 둘 하면 두루치기, 셋 하면 새끼발가락, 넷 하면 너구리, 다섯 하면 다슬기, 여섯 하면 여수…… 등과 같이 조직화해서 암기하는 방식이다.
넷째, 장소법이다. 이는 친숙한 지형지물에 기억해야 할 항목을 연관시키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자전거, 구두, 우산, 유리병, 잡채 등을 외워야 한다면, 머릿속으로 학교 정문 꼭대기에 자전거가 걸려 있고, 주차 요금 정산소에서는 티켓 대신 구두를 선물하며, 강의실이 있는 단과대학 건물 입구에서는 우산을 나눠 주고, 강의실 책상에 빈 유리병을 놓고 맛있는 잡채를 먹고 있는 여러분을 상상하면 된다.
다섯째, 머리글자 이용하기다. 이는 실제로 'USA'나 'UFO' 및 'IQ' 등과 같이 실생활에서 자주 이용되는 방식이다.
3) 인출
지금까지 제시된 대부분의 처리 과정은 기억 정보의 공고화를 통한 저장 과정에 중점을 두었으나, 실제로는 저장 과정만큼 중요한 것이 기억 항목을 어떻게 인출해 내는가 하는 문제다. 사울 스턴버그(Saul Sternberg, 1966)은 단기기억에서의 인출 특징을 조사하기 위하여, 서로 다른 숫자들(예, 2, 0, 6, 4, 7.…...)을 순차적으로 제시하고 피험자로 하여금 그 항목을 기억하도록 요구하였다. 일련의 기억 항목을 순차적으로 제시받은 직후, 피험자는 화면상에 특정 숫자 하나를 제시받았다. 이 숫자는 기억을 검사하기 위한 검사 항목으로, 피험자는 그 숫자가 기억 항목 중 하나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도록 요구받았다. 제시된 검사 항목이 기억 항목 중 하나인 경우 (정답 항목 시행)의 반응 시간을 분석한 결과, 기억 항목의 수가 증가할수록 반응 시간이 점차 증가하였다. 이는 단기기억 내 저장된 정보를 인출하는 과정이 기억 항목 전체를 한꺼번에 인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인출하는 순차적 처리(serial process) 방식을 따르고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기억 항목의 증감과는 무관하게, 기억 항목들 내에서 검사 항목의 상대적 위치는 반응 시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이는 기억된 항목의 인출은 순차적이지만, 일단 인출이 시작되면 기억 항목 전체를 인출하기 전까지는 종료되지 않는 전체적 순차 처리(exhaustive serial process) 과정임을 의미한다.
단기기억과는 달리, 장기기억에서는 저장과 인출 과정을 별도로 측정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기억 실패는 저장 과정에서의 문제점뿐 아니라 인출 과정의 실패로도 설명될 수 있다. 툴빙과 펄스톤(Tulving & Pearlstone, 1966)은 피험자에게 기억 항목을 가능한 한 많이 생각나는 대로 회상하는 자유회상(free recall) 과제와 회상 단서를 제시받는 단서 회상(cued recall) 과제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단서 회상에서의 회상 수준이 훨씬 높았다. 이는 회상 실패가 기억 저장 과정의 실패 때문이 아니라 인출 단계에 필요한 적절한 단서 정보의 부재 때문일 가능성을 보여 준다.
[효율적인 기억을 위해 기억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학 생활을 시작하면서 학생들이 깨닫는 것은 공부할 교재의 분량이 너무나 방대하는 점이다. 대학 입학 이전에는 비교적 한정된 내용의 교재와 정해진 주제 안에서 학습 내용이 반복되는 경향이 있는 반면에, 대학 교재는 내용도 어렵고 전문적이며 분량도 월등히 많고 외국어 교재인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 장에서는 다양한 기억술을 제시하고 있지만 기억술 자체만으로는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 방 대한 분량의 정보를 효율적으로 학습하고 기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기억의 개인차에 대한 연구들은 기억할 내용에 대한 효율적인 선택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일반적으로 학습 수행 능력이 월등한 사람들은 기억 용량 자체가 탁월한 경우도 있지만, 무엇을 기억해야 주어진 과제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지를 잘 파악한다. 이러한 선별적 정보 처리를 위해서는 예습과 강의 경청을 통해 평가 대상이 될 주제들을 잘 파악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중요한 내용을 파악 못하고 두꺼운 교재의 내용들을 두서없이 학습하려는 시도는 무모하다.
둘째, 학습 내용 선별이 잘 이루어졌더라도 그것을 정확히 기억하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기억술의 선택이 필요하다. 이는 학습에 소요되는 시간의 효율성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어떤 학생들은 벼락치기 시험공부를 하는데도 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얻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그 학생의 기억 용량 자체가 탁월할 수도 있겠지만, 기억할 정보의 특성에 따라 적절한 기억술을 선택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탁월한 경우도 많다. 결국 적절한 기억술 선택에 의한 증진된 기억 효율성이 부적절한 학습 습관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이익을 상쇄시킨 경우에 해당한다.
결론적으로 효율적인 기억과 학습을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이나 시간 투자는 물론 기억할 정보를 선별적으로 처리하고 적절한 기억술을 선택하는 능력이 선행되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